"이 일 후에"라는 것은 바로 119절에서 "네가 본 것과"의 후로 보아야 합니다. 계시록은 1장부터 22장까지 일사천리로 한 번에 다 주어진 것이 아니고 총 7단계로 나누어서 요한에게 보여진 계시입니다. 그래서 119절의 "네가 본 것과"란 말은 그가 처음 하늘의 신령한 계시를 보았다는 말이고 41절의 "이 일 후에"란 말은 1장에서 본 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한 번에 계시록의 모든 내용을 다 보여주시지 않고 나누어서 계시를 주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계시의 내용이 너무 두렵고 신비로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2-3장까지의 내용은 땅의 장면인데 사도 요한은 그 첫 번째 계시를 받고도 그 내용이 너무 신비롭고 충격적이어서 "그 발 앞에 엎드려 죽은 자 같이"(1:17)되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제 보여질 4-5장의 계시는 하늘(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인데 땅의 계시에 비해 얼마나 더 신비롭고 놀라운 장면이겠습니까?

그러면 요한이 "이 일 후에" 무엇을 보았다는 것입니까? "하늘에 열린 문"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4장에서 요한이 제일 먼저 본 것 바로 열린 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에 열린 문"38절의 빌라델비아 교회에 나타난 문(기회의 문)과도 다르고 또 320절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님이 말씀하신 문(마음의 문)고도 다른 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에 열린 문"이란 바로 '계시의 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하늘의 문을 여시고 그 안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것은 실제 문이 아니라 상징으로 보아야 합니다.

요한은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로 순간적으로 올라갔습니다. 성령에 감동되었다는 것은 '성령 안에서'란 뜻인데 여기서 요한은 성령 안에서, 성령에게 감동되어 하늘 보좌로 올라가 무엇보다 먼저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 분이 누구입니까? 두말할 나위도 없이 이 분은 성부 하나님입니다. 세상살이에 지친 우리들에게 하늘의 보좌를 통해 힘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