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영적 상태는 영적 갈망의 정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영적인 갈망이란 정상적인 갈망을 말합니다. 정상적인 영적 갈망은 주님과 성령의 소원에 일치하는 갈망입니다. 대신에 왜곡된 갈망도 있는데 그것은 이기적인 욕심에서 나오는 갈망입니다. 그러한 왜곡된 갈망의 목표는 자기가 높아지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왜곡된 갈망은 영적 교만을 낳습니다. 그리고 결국 패망합니다. 정상적인 영적 갈망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족과의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바울이 말씀한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이란 세상 것에 대하여 자족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형편에 항상 만족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를 봐도 신령한 것에 대해서 자족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오히려 신령한 은혜는 늘 부족하게 생각하고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영적인 성장이나 영적 성장에 필요한 은사나 능력이나 기회를 적극적으로 선용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책망을 받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는 이런 영적 갈망이 없었습니다. 대신에 세속적인 부와 육체적인 건강에 만족하는 것으로 머물렀습니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하등 다를 바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땅히 갈망해야 할 영적 부요는 무엇입니까? 주님은 18절에서 세 가지를 사라고 말씀합니다. 사라고 하는 뜻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얻기 위해 네 모든 것을 투자하라는 뜻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신령한 은혜로 충만하기를 갈망하고 갈망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사야 할 신령한 은혜의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불로 연단한 금(정금)”은 고상한 인격이나 불굴의 믿음을 상징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입니다. “흰 옷은 착한 행실, 순결한 삶을 상징합니다. 이웃들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삶을 닮는 것입니다. “안약은 삶의 지혜, 판단력, 통찰력, 분별력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내게서 사라는 말씀입니다(18). 예수 그리스도 안에 그 같은 신령한 은혜가 다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 부요를 우리가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우리의 돈으로 혹은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합니까?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은혜를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에 다른 방법으로 사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회개하면 신령한 은혜를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말씀에는 회개가 열심을 내는 것 뒤에 위치해 있지만 시간적으로 보면 앞섭니다. 회개는 은혜를 얻는 시발점이요 기초입니다.